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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회에 후회한다.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목사로서가 아니라 목회정책에 후회한다. 기도와 설교에도 심방에, 대인관계에 대충 대충이 지나온 것 후회하며 부끄럽다. 지난 과거에 잘못한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회개한다. 중대한 사건뿐만 아니라, 사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강렬하게 후회스럽다. 오직 인간만이 알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 유인원, 앵무새를 비롯해 감수성과 지능이 높은 동물들도 후회를 느낀다. 심지어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쥐가 후회라는 감정을 아는 것 같다는 보고가 있다. 인간이 느끼는 후회의 감정은 다양한 감정 중에서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그것이 부정적 감정으로 매우 독특하며, 정신과의 심리 상담 등 비약물적 치료법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감정 중 하나다. 후회에 관한 속담 및 격언도 많은 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가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말인데, 대화를 상대의 집에서 한참을 떠들고 난 후 계단을 내려가 현관에 도달할 때쯤 '아, 그때 그런 농담을 했으면 기가 막혔을 텐데하고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관용구로 만든 것이다. 농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일을 저지르고 나서 드는 대안, 후회 등을 뜻의 말로도 사용된다. 이탈리아 속담에 '배가 가라앉은 다음에야 배를 구할 방법을 알게 된다'라는 속담이 있고,
한국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비튼 말로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고 그 원인을 버려두면 반복될 수 있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사자성어로 망양보뢰(亡羊補牢) 양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뒤 일을 대비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란 말은 후회할 일이 이기 전에 예방하라는 의미의 속담이지 후속 대처에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좀 과한 표현에 '사후약방문'이라는 표현도 말 그대로 환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약을 처방한다는 뜻 솔직한 말이기도 하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후회는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후회는 과거의 어떤 선택에 대해 '그때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반복하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후회는 독과 같다. 후회하다 보면, 결국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후회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또는 자기 전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후회에 휩쓸리지 말고, 그것을 교훈 삼아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게끔 반성하고 다짐하는 선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실제로도 백 번 천 번 만 번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
지금 후회하고 있을 시간에 그것을 수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다음에는 안 그래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고 깨끗이 잊는 것이 백 배 낫다. 쉼 없는 사역의 불청객 목회 소진에 쉼표에 예방하면 된다. 미국인 기독교 연합 레이먼드 장 회장이 최근 미국 기독교 여론조사에 목회자 38%가 사역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심각한 번아웃 상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번아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사역 특성상 한번 시작된 번아웃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번아웃은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심리적·생리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제로 목회자들의 일상은 분주하다. 매일 새벽기도와 수요·금요예배, 주일예배 설교 준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수시로 교인들의 이사나 개업, 입원 심방과 장례 예배를 인도하는 것도 목회자의 몫이다. 현대 온라인예배와 교회교육을 위한 영상 콘텐츠 제작은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부담은 담임목사나 부목사 모두 마찬가지다. 멀리 휴가를 떠나지 않고서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하지만 휴가 중에도 쉴 새 없이 목사를 찾는 연락이 온다. 그래서일까. 최근엔 ‘혼자 쉬고 싶다’라며 하소연하는 목회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번아웃에 빠지기 전에 특별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개신교 단체, 장 목사의 ‘예배를 위임하라’ ‘강단을 다양화하라’ ‘공동체를 분산하라’ ‘진실을 밝히라’ ‘본질적인 부분까지 업무를 줄이라’ ‘절제의 영성으로 들어가라’ ‘익숙함을 넘어 진정한 쉼에 도전하라’ 등 과중한 업무를 과감하게 중단하고 쉬기 위해 노력해야 소진을 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목회 현장에서 시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도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라고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따로 한적한 곳에서 쉬어라. 제자들의 활동 보고에 대한 예수의 반응은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배려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전도 활동을 하는 동안 상당히 피로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며 제자들을 아끼는 스승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휴식은 새로운 내일을 위한 영. 육의 재충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생각되어야 한다. 사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쉬어라"라는 명령형으로서 "충분히 휴식을 회복하라"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지금 대화를 하는 장소가 매우 분주한 장소인 것으로 보인가. 즉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마가의 전형적인 묘사법으로서 예수가 가는 곳에는 항상 둔중이 쉴새 없이 모여들고 있는 생동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