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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란?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도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권능으로써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일입니다."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보존과 통치, 그리고 후에 말할 협력이 모두 하나의 섭리 적 사역의 여러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유지, 또는 보존하신다는 말은 "모든 피조물을 붙드신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도 성자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의 존재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심을 표현하는 말로. 만일에 한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붙드시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 피조계는 결코 계속해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은 그 존재의 시작에서만이 아니라 그 지속에서도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하나님께 의존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결코 자족적인 존재가 아니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성자의 유지하에 시키시는 활동의 범위에서 배제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대상인으로 우리의 생명도 존재도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도 다 하나님의 우리를 붙드시는 손길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관련이 있지 않고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사실을 잘 깨달은 시편 기자는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시 104: 27-29).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있는 존재 전체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 모두가 하나님의 붙드시는 손길 때문에 이 순간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태양이 없어지면 자신들이 그 존재를 계속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태양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한 상황입니까?
우리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 깊은 통분함을 느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붙드시는 손길을 유의하고 그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해야 합니다. 이점에 있어서 바빌론에서 돌아와 회개하면서 찬양을 드리는 옛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아주 바른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해야 할 것을 천명한 후에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8:6).
온 세상의 피조물들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데도,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심한 통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을 그저 유지해 나가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가지신 목적을 향하여 이 세상이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세상을 운영해 나가고 계신다. 이를 하나님의 경영 또는 경륜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세상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통제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역사와 민족들의 흥망 성사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계신다. (단 4:25).
이 세상에 되어 지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손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체적 통치 행위에서 그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이시라는 것이(엡 1:11)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소에도 이런 사실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아주 잘 나타나는 것은 때로는 이 세상의 죄악을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심판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에서는 더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말로 다음과 같은 아모스의 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중에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중의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눔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 칼을 명하여 살육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아모스 9: 1-4).?이런 심판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가 나타나 보이는 내용이다.
보존과 통치의 관계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유지하시는 것이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향해 잘 다스려 나가시는 과정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시려고 하는 것은 이 땅 위에 친히 다스리시며, 모든 피조계가 기꺼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 나가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 나라의 형성을 위하여 온 세상을 지금도 유지하시며 다스려 나가시는 것이다. 섭리의 구체적인 과정은- 기적의 경우 외에는 동시 발생, 혹은 협력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일반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되는 원인과 결과의 연관 관계를 무시하고서 되는 것이 아니며, 강요와 억압을 부여하여 피조물들의 작용과 의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원인 결과의 관계를 넘어서서, 그 과정에 역행하여 즉 자연법칙으로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단들을 쓰셔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직접 일으키기도 하시고, 관여하시기도 하십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일어난다는 것이 섭리 교리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일어나든지 모든 것이다
하나님의 관장 아래에 있으므로 이 세상에는 "우연히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점을 확언해 주고 계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 사리온 데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라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섭리를 인정한다면,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우연에 근거하거나, 요행을 바라고 할 수는 없다.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세상에 우연히 요행히 되는 일도 있다는 생각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닥치는 모든 일이 모두 다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손길에서 우리에게 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좋은 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연계 일반보다는 인간들에게, 또 인간들 일반보다는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더 특별한 섭리를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이들은 그저 세상만사를 하나님께서 다 섭리하신다는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줄 알고서, 그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고 그 인도하심에 잘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이들과 그 섭리 아래 있으나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큰 차이입니다.? 오직 성경적으로 바르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섭리를 인정합니다. 섭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음 말씀을 실천적으로 체험하며 알게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