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을 바쳐 한국 지켰다” 6·25전쟁 미국 참전용사인 97세 <래리 키나드> 가 2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참전용사 후원의 밤'에서 한 말이다. “나는 전국을 다니며 6·25전쟁을 알리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에 젊음을 바친 참전용사들이 한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사랑했다. 내 젊음을 바쳐 이 훌륭한 한국을 지켰다는 게 내 인생의 멋진 추억입니다.”

키나드씨는 1950년 미 육군 소위에 임관, 1951년 6·25 파병이 결정돼 포병관측 장교로 9개월을 복무하며 임진강 전투(1951년 4월 22~25일) 등에 참전한 노장이다. 올해로 97세인 키나드씨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대외 활동이 가능한 몇 안 되는 6·25 참전용사다. 임진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사흘간 전력을 다해 저지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돌격해 오던 중공군의 끔찍한 모습이 떠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박격포와 대포를 퍼붓는 중공군 때문에 숨어다닌 약 두 달 동안은 잠도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불과 30m 앞에서 포탄이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여러 번”이라고 증언했다. 공학을 전공한 그는 1952년 고국으로 돌아가 에너지 발전 회사 등에서 일했다.

덴마크의 그룬트비 목사는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라는 표어를 가지고 국민의 정신을 개혁한 결과 덴마크는 오늘날, 지상 낙원이라고 할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호화로운 파티에서도 선조들이 굶주리며 고생하던 것을 상기하면서 맛없는 까만 보리빵을 먹고 냉수를 마시고 나서 파티장에 들어가 즐겁게 논다. 대단히 중요한 의식이라고 본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고생하던 때를 쉽게 잊어버리셔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상과 부모님 대를 생각하면 독일에 간 광부는 모두 8968명. 파독 간호사는 1만 2000여 명으로 파악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배불리 먹었으면 소원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6·25전쟁의 폐허에서 주저앉지 않고 희망을 품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남한보다 좋았던 때였다. 정부가 처음 독일 탄광으로 떠날 젊은이 100명 모집에 2500명이 지원한다. 1963년 바늘구멍을 통과한 123명이 독일로 떠났다.

60년대 한국 실업률은 30%대에 달했다. 그런데 경제건설의 마중물 역할을 할 외화는 턱없이 부족한 때 광부들은 제한 몸 돌보지 않고 가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땅속 800m 아래의 막장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막장에서 이들이 캔 석탄은 조국의 산업화에 필요한 '검은 금'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갓난아기를 고향에 두고 이역만리 길에 오른 이들도 있다. 당시 간호사 월급은 한국보다 독일이 몇 곱절 많았다.

이들의 헌신과 노고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디딤돌이 된 것은 분명하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헌정기념 전'이 열렸다. 파독 근로자들의 삶과 애환을 보여주는 사진관, 유물관, 인터뷰영상관 등으로 꾸며졌다. 여기에 '기적을 캐내고 나라를 구하라'는 라는 것이 주제였다. 뭉치는 것이 나라의 국력이다.

성경 이스라엘 12지파 공동체 안에서도 분열과 갈등으로 시작된 것이 전면전으로 확대, 세 차례 치열한 투 끝에 연합군이 승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대가는 참혹했다. 연합군은 4만 명의 전사자를 내고, 베냐민 지파는 겨우 600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 진영에서 승리를 기뻐하는 대신 오히려 울부짖으며 통곡한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가.” 정의를 세웠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이들이 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을까?

우리 사회의 혼란은 무능하고 이기적인 소수 집권세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능력주의에서 밀려난 서민들의 분노와 무력감, 양 진영의 극단적 대립으로 마비된 정치 구조 등 복합적인 악이 얽혀 있다. 겸손과 자기희생은 사라지고, 자아 과잉과 독선에 빠진 사태이다. 과연 나는 떳떳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일어나서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 드러난 것이다.